예로부터 왕족의 호위무사를 해오던 우리 가문 덕분의 나는 공주인 너를 만날 수 있었고 너의 그 아름다운 성품과 귀천 없이 모두를 대하는 태도 덕분에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운 오랜 친구이면서도 한없이 먼 공주의 호위무사이기도 했다.
항상 눈을 뜰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너는 나와 함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한없이 먼듯한 이 거리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너와 나의 위치나 관계상으로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타이치!"
나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을 밝히는 듯한 웃음을 보여줄 때면 이 보이지 않는 머나먼 거리를 원망하게 된다.
"네, 공주님"
"나랑 둘이 있을 때는 이름 부르라니까~"
"제가 어찌 감히 공주님의 존함을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10년을 넘게 봤는데 10년 넘게 같은 반응이네"
"우리 나름 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밝게 웃고 있지만 조금 씁쓸해 보이는 너의 표정의 나는 너의 요청을 들어 줄 수 없다는 게 조금 씁쓸해 보이는 너의 표정에 나는 너의 요청을 들어 줄 수 없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 머리를 토닥여 주려했지만 이것 또한 너와의 관계로는 하면 안될 행동이기에 너의 얼굴도 못 쳐다보고 먼 곳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 먼 곳에 던져둔 나의 시선에는 바람에 살살 흔들리고 있는 개나리들이 보여 너의 머리색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 이내 너도 개나리를 본 건지 다시 밝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타이치! 개나리의 꽃말이 뭔지 알아?"
"뭔가요?"
"나도 최근에 알게 된 건데 희망 이래!"
'희망... 꽃말마저도 너와 어울리는 꽃이구나'
"이제 슬슬해도 지고 있으니 돌아가죠."
"응! 알았어!"
너와 발을 맞춰 걷다 보니 어느새 네가 머물고 있는 궁에 도착하였고 너를 발견하고 늦었다며 걱정하며 달려오는 하녀에 너는 미안한 듯 웃으며 미안하다며 그 하녀를 진정시키고 있으면 나는 한 발짝 물러나 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하녀를 다 진정시킨 건지 너는 내게 낮에 보여준 미소를 머금고 다음날 아침에 보자며 인사를 건넨다. 분명 있다가 밤에 호수에 비쳐진 밤하늘을 보러 다시 나와 만날 거면서 말이다.
너의 방 앞에서 너와의 오늘 있던 일들을 차곡차곡 되짚어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고 너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언제 이리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네가 하녀들 몰래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와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타이치! 오늘도 여기에 있었네?"
"항상 이 시간이면 호수에 가시니까요."
나의 답변에 너는 금방 해사시 웃으며 먼저 걸음을 옮긴다. 그럼 나도 이내 너의 발자취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벌써 너와 밤마다 호수에 비친 별과 달을 보러 온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구나'
처음 너와 호수에 갔을 때는 지금처럼 같이 간 게 아니었지 오늘처럼 몰래 그 누구에게도 말도 하지 않고 사라져서 온 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이 되어서는 너를 찾으러 다녔고 나 또한 너를 찾으러 여기저기 뛰어다녔어 내가 너의 호위무사인데 너의 위치 하나 모르는 내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날 거 같아도 꾹 참고 너를 찾아다녔지 그러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호수의 다리 위에서 호수에 비친 밤 하늘을 보고 있는 너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너를 꼭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네 그때 나를 달래주던 너는 여느 때처럼 웃으면서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며 나를 다정히 달래주었어 그때 너의 표정은 왜 인지 조금 슬퍼 보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너와 나 둘 다 정말 어렸었는데'
잠깐 옛 기억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호수에 너는 여느 때처럼 호수에 비친 밤하늘을 보던 위치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다 입을 땠다
"타이치"
"네, 공주님"
"항상 나랑 밤마다 호수 보러 와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그저 저의 역할을 할 뿐인걸요."
너는 다시 입을 꾹 닫았고 나는 먼 곳을 바라보다 너의 시선이 향해 있는 호수에 나도 따라 시선을 담가보니 너의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던 너의 미소는 눈물이라는 은하수가 되어 호수로 흩어지고 있었다.
너의 눈물에 나는 황급히 너를 달래보려 하지만 나는 너처럼 다정하게 달래줄 방법을 몰랐기에 고민하다가
"공주님"
"어?"
"죄송합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너를 조심히 내 품 안에 숨기자 너도 놀란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나의 허리춤을 꼭 잡고는 소리 없이 은하수를 흘렸다.
'울 거면 속 시원하게 소리 내서 울지'
네가 흘리는 은하수가 내 안의 호수에 퍼지니 작은 은하수 한 방울 한 방울에 크게 일렁이는 것 만 같아 너를 조심히 토닥여 주자 네가 나를 처음으로 밀어냈다. 네가 나를 밀어내는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타이치! 나 이제 괜찮아!"
언제 울었냐는 듯 밝게 웃어 보이는 아니, 웃어 보이려는 너의 모습에 심장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 만 같았다.
"이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더 늦으면 다들 걱정할 거예요."
"응! 이제 돌아가자."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니까. 이 이상으로 번지면 안 되는 그런 관계니까 항상 네가 웃어주어 그 웃음이 나에게 너무 당연스러웠고 항상 나에게 다가와 주고 호의를 베푸는 것이 배려가 아닌 당연한게 돼버렸다. 그렇기에 너의 눈물은 나에게 너무 아팠으며 너의 밀어냄은 마치 내 앞에 갑자기 생겨버린 담벼락과도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봄이 가고 볕이 따가운 여름이 다가왔다. 너와는 여느 때와 같지만 하루하루 해가 뜨고 달이 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담벼락은 높아만 가고 있다.
"공주님"
"..."
"공주님?"
"어? 불렀어 타이.. 카와니시?"
"날이 덥습니다.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떠실는지"
"아, 응. 돌아가자"
약 1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던 호칭이 바뀌었고 말수 도 점차 줄어들어 가고 있다.
"사쿠라 공주님..."
"공주님께서 또 식사를 거르셨나요."
"더위라도 먹으신 건지 요즘 통 식사를 못하시네요."
"약이라도 지어 드려야 하려나... 곧 혼인식이시면서... 쓰러지시는 거 아닌가 몰라..."
"혼인이오?"
"어머? 이야기 못 들었어요? 나는 또 공주님이랑 그렇게 애틋하게 붙어 다니셔서 다 들으신 줄 알았는데.."
"아... "
"어휴.. 정말 잘 어울렸는데 공주님이 무사님 지키려고.."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다 들었으면서 하나도 듣지 못한 척 여느 때 처럼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너의 모습에 하녀는 허둥지둥 아무것도 아니라며 변명을 하자 너는 그러냐고 저쪽에서 찾는 거 같다며 이 자리에서 하녀를 벗어나게 하고는
"카와니시"
"네, 공주님"
"나랑 호수에 갈래? 낮의 호수의 매력도 알려줄게"
"네... 가시죠"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너와 함께 호수에 가는 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너와 나는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걷다 보니 밤마다 와서 너의 하루를 정리하던 그 호수에 도착했다. 여기 오는 길이 이렇게 짧았던가 왜 오늘따라 모든 게 아쉬운 것 투성인지 왜 이제야 이 호수 주변의 돌 하나하나 잡초 하나 작은 들꽃 하나 다 눈에 밟히는지
"카와니시"
"네."
"낮의 호수도 밤의 호수 못지않게 아름답지?"
"네. 무척 아름답습니다."
"카와니시.. 오늘이 카와니시랑 호수에 오는 마지막 날이야. 그동안 나랑 호수에 함께 와줘서 고마웠어. "
"혼인.. 때문인가요."
너는 두 손을 주먹을 꽉 지으면서 나를 보려 하지 않으면서 대답하였다.
"응, 이제 혼인할 나이도 됐고... 비록 내가 연모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래."
"연모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까?"
"아니.. 괜찮지 않아"
"그러면 그 혼인하지 않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 주제도 모르는 말을 자꾸 내뱉는데도 너는 그저 웃으며 받아준다. 그것도 아주 슬픈 웃음으로
"그래도 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인걸 나는 그걸로 이혼인을 할 이유는 충분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접니까.."
이번에도 너는 나를 향해 웃어주기만 하는구나 너의 입에서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너의 표정이 너의 그 구슬픈 눈물이 모든 걸 대답하는구나
"돌아가자 하다만 자수를 해야해"
"공주님"
"응, 카와니시"
"저는 공주님의 호위무사 입니다."
"응"
"저의 역할은 항상 공주님의 곁에서 공주님을 지켜드리는것 입니다."
"맞아"
"그러니 공주님꼐서 저를 지키실 이유는 없습니다. 저를 위해 원치 않는 혼인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카와니시, 돌아가자 다들 기다려"
너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왜, 나는 항상 늦은 다음에서야 후회를 하는 거야
시간이 흘러 너는 혼인 상대인 사람과 자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가질수록 상대방은 너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게 늘어만 갔다. 그리고 너는 그 사람의 장단에 맞춰주며 날이 갈수록 지쳐갔지
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 혼인식 당일이 왔다. 나는 다른 호위무사들과 함께 식장에서 너의 상대가 걸어오는 걸 보고 있었어 그리고 곧 너도 한걸음 한걸음 그 사람에게로 걸어갔어 항상 환하게 웃기만 하던 너의 얼굴에 웃음은 남아 있지 않았어 마치 끌려가는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얼굴이었어 그런 너와 눈이 마주치자 너는 다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고 그 웃음을 본 나는 너에게로 다가갔어
내가 너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하자 주변은 금세 시장통이 되었어
"공주님 아니, 유키"
"타이치..."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이라고 하셨죠?"
"응..."
"개나리의 꽃말이 하나 더 있는 거 알고 계시나요?"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
항상 네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웃음을 머금고 너의 양손을 감싸고 혼자 삼켜내야 했던 우리의 관계로 말할 수 없었던 그 말을 꺼냈다.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 한 몸 받쳐 당신만을 연모할테니 저에게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너는 이내 내가 알고 있던 너만의 밝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