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타이치 × 인어 유키
맡은 것만 잘하자 다른 거에 눈 돌리지 말고 너 전에 인간에게 홀려서 거품이 된 인어 기억하지? 괜한 마음 품지 말고 이곳 생활에 전력을 다하며 살아.
인간이 뭐길래 인어들이 자꾸 홀려서 한 줌의 거품으로 우리의 곁은 떠나는지 왜 한 줌의 거품으로 사라질 때 원망이 아닌 이곳에서 지낼 때 보다 더 행복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흩어지는지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이유 없는 호기심은 이성을 괴롭히는 독 중 하나이니까.
인간에 대한 생각은 지워둔 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물속에 굴곡져서 들어오는 반짝이는 빛들이 유독 이뻐 바라보다가 그 빛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천천히 물 위로 올라가 보았다. 어릴 적 동생을 챙기러 한번 올라온 적 이 있어 몸이 기억하는 공기와 그때도 하늘에서 아름다운 빛을 나누어주던 그 빛이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해서 눈도 못 마주치던 태양도 그때와 바뀐 것이 없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자신의 종족을 앗아간 인간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만 보고 들어가려던 계획이 틀어진 것도 잊어버리고 태양이 나누어주는 볕을 맞으며 바다 표면에 빛이 수놓은 낮에 뜬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만 인기척만 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에게만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낸 상대는 더욱 진한 인기척을 내며 나에게로 다가왔고 나는 바스락바스락 모래알이 부서지는 소리만을 들으며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저기, 너 인어 맞지"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분명하게 나에게 이야기한다는 듯이 나를 두드리는 너의 손길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떤 색의 머리를 가졌는지도 어떤 색의 눈으로 나를 무슨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너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던 건 '인간이다' 정도였을 뿐 인간과 엮여서 좋을 건 없으니 너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이내 몸을 돌려 서둘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있던 일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아무 일도 없었고 괜히 걱정할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지만 네가 건든 부분은 아직도 태양이 나누어준 빛에 그을린 듯 뜨거웠다.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고도 계속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한 느낌에 너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해줘서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다음날 태양이 물속 가득 빛을 나누어주는 시간에 다시 한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뜨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제와 같이 태양이 바닷속 깊숙이 빛을 나누어 주는 지금 나는 어제와 같은 장소로 이동하였고 그곳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하긴 그 인간이 어제 지나가다 우연히 나를 만난 걸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건 인간이라는 것과 그 인간의 목소리뿐이니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여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 전까지는 나는 너를 못 알아보겠지
"어?"
놀랐다. 고작 어제 잠깐 만났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이래서 인어들이 인간들에게 홀려서 한 줌의 흔적도 없이 흩어진 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제와 같이 어깨를 두어 번 톡톡 치는 너의 손길에 고개를 네가 있을만한 방향으로 돌려보았다.
"너, 어제 그 인어 맞지? 우리 또 보네?"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들도 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너는 분명 나에게는 독 일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궁금해지고 생각나고 이런 삼정의 끝은 흔적도 안 남는 거품이라는 걸 알면서 그 결과를 선택하면서까지 너와 같은 인간을 사랑한 거겠지
그 길을 선택하는 인어들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근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거 같아
나에게 너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어 너에 대해서 알려줘 나의 목소리는 너에게 닿지 않더라도 너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어
내가 선택한 이 길 그 끝이 흔적 하나 남을 수 없더라도 너의 기억이라는 바다에서 마저 살아갈 테니
"너를 알려줘"